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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후회 없는 삶,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죽음
후회 없는 삶,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죽음
후회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녁이면, 가을이면, 연말이면 ‘그때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일은 차라리 맡지 말걸’ 하는 후회를 달고 사는 나. 이런 내게는 사실 ‘후회 없는 삶’이라는 것이 불가능할 것임을 안다.
하지만 아주 가끔 ‘이 작가는 정말 후회 없는 삶을 살았구나,
적어도 후회 때문에 삶을 저당 잡히지는 않았구나’ 하는 부러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할 권리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을 때,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읽을 때, 루쉰의 여러 산문집을 읽을 때, 나는 ‘이 작가들은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구나’ 하는 감동에 휩싸인다. 최근에는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한겨레출판사, 2018)를 읽으며 그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아침의 피아노>를 읽으며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병마와 싸우며 고통 속에 사라질지라도, 후회 없는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

아침의 피아노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피아노에 응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틀렸다. 피아노는 사랑이다. 피아노에 응답해야 하는 것, 그것도 사랑뿐이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중에서

이 책은 이토록 아름다운 ‘피아노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된다. 피아노는 사랑이며, 피아노에 응답해야 하는 것도 사랑이며, 피아노의 영롱한 울림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도 사랑일 것이다. 이 책은 철학자 김진영이 암 선고를 받고 1년 후 세상을 떠나기 3일 전까지 쓴 일기를 모은 것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일기가 아닌 사랑에 대한 철학서이며 삶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담은 에세이이기도 하다.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 철학자 김진영이 고통 속에서도 힘겹게 써낸 일기 234편에는 그가 자신에게 허락된 얼마 남지 않은 하루하루를 소중히 가꾸는 아름다운 흔적들이 오롯이 아로 새겨져 있다. 그는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압박 속에서도 이렇게 눈부신 여유를 보여준다. “마음이 무겁고 흔들릴 시간이 없다. 남겨진 사랑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다. 그걸 다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마음이 무겁고 흔들릴 시간이 없다는 것, 남겨진 시간을 오직 ‘사랑’을 위해 쓰자는 굳건한 결심. 그것이 이 아름다운 책을 관통하는 철학의 주제이자 사랑의 열정이다. 그는 암 선고를 받고도 차분히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글을 쓴다.
“내가 존경했던 이들의 생몰 기록을 들추어본다. 그들이 거의 모두 지금의 나만큼 살고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나는 살 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그래도 더 사셨어야 하는데, 요새 평균수명이 얼만데, 앞으로 20년은 더 사셨어야 하는데’라고 덕담을 하곤 하지만, 사실은 ‘내가 누릴 만큼 누렸다’는 이 깨달음이야말로 우리에게 결핍된 ‘생에 대한 욕심 없는 사랑’이 아닐까. 무조건 오래 살아야 한다는 강박은 생에 대한 사랑이기보다는 집착이나 욕심에 가까울 것이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생에 대한 사랑의 순간들’로 그득히 채울 수 있는가가 우리 삶의 진정한 미션인 것이다.

철없이 만개할 권리그의 눈길에는 ‘아직 죽음을 선고받지 않은 사람들’이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 이렇게 비춰진다. “TV를 본다. 모두들 모든 것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 그렇구나. 어쩌면 우리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기에 이토록 많은 것을 꿈꾸고, 그렇게 많은 것을 욕심내고, 감당하지도 못할 많은 일을 떠맡으며 ‘지금 내 인생에 한 번뿐인 이 하루’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것이 아닐까. 그는 자신 또한 무언가를 자꾸 잊어버린다고 고백하여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살아 있는 동안은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할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 그는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자신의 몫, 즉 ‘이 삶에 성실할 책무’를 잊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분투했던 것이다.
생의 마지막을 앞둔 하루하루, 어떤 날은 힘들고 무기력하다가도 어떤 날은 다시 하루하루 일어서야 한다는 찬란한 의지로 번뜩이는 문장들이 일기 곳곳에 숨어 있다. “어떻게 모든 것들을 지킬 수 있을까. 나를 지킬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숨김없이 드러내기도 하고, “면역력은 정신력이다. 최고의 정신력은 사랑”이라는 문장으로 독자들의 가슴을 따스하게 어루만지기도 한다. 그는 죽음을 앞두었지만 남아 있는 하루하루가 삶의 눈부신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잊지 않았다. “꽃들이 시들 때를 근심한다면 이토록 철없이 만개할 수 있을까.” ‘철없이 만개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눈부신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꽃들이 시들 때를 근심하지 않고 철없이 만개하는 것처럼, 우리도 살아 있는 내내 조금 더 철없이, 조금 더 ‘시들 때를 근심하지 않고’, 오늘 이 순간을 더없이 아름답게 가꾸고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는 아픔 속에서도 생이 지닌 눈부신 약동의 에너지를 보았다. 그는 이렇게 쓴다. “생 안에는 자기를 초과하는 힘이 있다.” 나는 이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며 ‘내 안에서 나를 초과하는 생의 힘’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보았다.

후회 없는 삶,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죽음
그는 “어려운 사상가와 철학을 알기 위해 배우는 교양을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 안에서 나오는 사유를 위한 공부를 귀히 여기라”고 조언했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생의 목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진정한 동력일 것이다. 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걸작으로 여전히 빛나는 프루스트의 말년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가 침대 방에서 살아간 말년의 삶은 고적하고 조용한 삶이 아니었다. 그건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삶이었다.
침대 방에서 프루스트는 편안하게 누워 있지 않았다. 그는 매초가 아까워서 사방으로 뛰어다녔을 것이다. (…) 독자는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마지막 책은 100m 달리기 경주를 하는 육상 선수의 필치와 문장으로 가득하다.” 바로 철학자 김진영의 마지막 순간들도 이렇지 않았을까. 100m 달리기를 전력 질주하는 듯한 열정을 한없이 차분한 문장에 담아낸 놀라운 내공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세상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깊다고,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러니 바람아 씽씽 불라고….” 이런 문장을 읽을 때는 철학자의 삶에 대한 안타까운 사랑, 죽어서도 삶을 그리워할 것 같은 아련한 마음이 느껴져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침 산책길에 발견한 풀을 보면서 “한 철을 살면서도 이토록 성실하고 완벽하게 삶을 산다”고 놀라워하는 철학자. 비 내리는 풍경을 보며 “비 오는 날 세상은 깊은 사색에 젖는다. 그럴 때 나는 세상이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가득하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세상을 사랑하는지도 안다”라는 문장을 떠올리는 철학자.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오랜 철학사의 질문에, “자유란 무엇인가. 그건 몸과 함께 조용히 머무는 행복”이라고 대답하는 철학자. 우리는 이런 철학자를 필요로 한 것이 아닐까. 지나치게 어려운 말로 철학적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매일 쓰는 일상의 용어만으로도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을 한 올 한 올 짜내어 삶이란 더하고 뺄 것도 없이 본래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임을 가만히 펼쳐 보이는 철학자. 그런 철학자가 우리 곁에 있었음을 더욱 감사하게 되는 오늘이다.

오늘도 사랑한다, 내 불완전한 삶을“모든 것이 꿈같다. 그런데 현실이다. 현실이란 깨지 않는 꿈인 걸까. 그 사이에 지금 나는 있다.” 이런 문장을 읽고 있으면 우리 삶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현실이 너무 무섭고 힘들고 어렵게만 느껴질 때, 현실이 오히려 꿈같고 꿈이 현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꿈같지만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불완전하고 부족함투성이이며 고통으로 얼룩진 삶 자체도 ‘내가 사랑해야 할 내 삶’임을 헤아리게 된다. 그는 마침내 받아들인다. 이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내가 받아들여야 할 삶이 어떤 것인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때와 시간은 네가 알 바 아니다. 무엇이 기다리는지, 무엇이 다가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것은 열려 있다. 그 열림 앞에서 네가 할 일은 단 하나, 사랑하는 일이다.” 그는 아프고 힘들기에 삶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열렬히 삶을 사랑하고 보듬고 받아들이는 길을 택한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 그 모든 것들을 여전히 나는 사랑하고 있다. 이전보다 더 많이 더 많이…. 이것만이 사실이다.”
“슬퍼할 필요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이런 문장을 읽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신은 암에 걸렸습니다’라는 선고를 받고도 이토록 초연함을 지켜낼 수 있는 철학자의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그는 슬픔보다 더 소중한 것들, 슬픔보다 더 강인한 것들을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그가 소중하게 여겼던 가치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내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내가 끝까지 사랑했음에 대한 알리바이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면 안 된다. 그것이 나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다. 나는 깊이 병들어도 사랑의 주체다. 울 것 없다. 그러면 됐으니까.” 이 문장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져 버렸다. 그렇다. 누구나 살면서 가끔씩 후회를 할 수는 있지만 후회 속에 삶을 마감해서는 안 된다.
내가 생의 끝까지 삶을 사랑했음을, 내 삶에서 소중한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음을 기억하는 것. 바로 그것이야말로 슬픔보다 더 중요한 것, 울고불고 원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깊이 병들었어도, 고통이 온몸을 휘감아도, 사랑을 멈출 수 없는 나를 발견하는 것.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바로 내가 진정한 사랑의 주체임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을 사랑했던 한 철학자가 자신의 삶에 바치는 최고의 헌사였던 것이다. 나는 <아침의 피아노>를 읽으며 내가 여전히 사랑해야 할 것들, 앞으로 더 많이 사랑해야 할 것들, 미움과 분노와 원망이 아닌 오직 사랑의 눈과 귀로 보고 들어야 할 존재들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고통의 순간 앞에서도 오직 ‘사랑할 권리’를 잃지 않는 것, 한 사람에 대한 사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랑받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사랑, 눈에 보이지 않거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해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다짐해본다. 우리의 삶은 오늘 불완전한 바로 이 상태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아직 사랑할 권리가 있으니까. 아직 사랑할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의 문장들을 읽고, 쓰다듬고, 껴안을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후회 없는 삶,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죽음

글. 정여울(작가 겸 평론가. 저서 <마흔에 관하여>,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 일 러스트. 조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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