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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쟁이인가 재즈의 창시자인가젤리 롤 모턴
젤리 롤 모턴
재즈는 1920년대 향락적이고 사치스러웠던 재즈 전성기인 ‘재즈 에이지(Jazz Age)’에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 미국 전역에서 재즈의 원조를 따지는 논쟁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의 입에 많은 음악가가 거론되었다.
그런데 이때 스스로 재즈를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뉴올리언스와 시카고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던 젤리 롤 모턴(Jelly Roll Morton)이었다.

‘Rhapsody in Blue’(조지 거슈윈 작)의 가수 폴 화이트먼(Paul Whiteman)은 “재즈는 300년 전 쇠사슬에 묶여 미국으로 건너왔다”고 말했다. 재즈의 뿌리가 아프로 아메리칸에 있음을 상징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재즈가 지금과 같이 음악적인 양식을 갖추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재즈는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에 걸쳐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서 발생한 음악이다. 이는 많은 재즈 문헌과 역사가들에 의해 공통적으로 규정되었고 다른 의견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지역과 시기는 특정되었다 해도 ‘누가 재즈를 처음 연주했는가’ 하는 점은 논란거리가 되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이지만 어디에서나 원조를 따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재즈의 원조를 따지는 논쟁은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불이 붙었다. 이른바 ‘재즈 에이지’에 재즈가 미국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재즈는 그저 남부의 홍등가에서 연주되던 원칙도 없는 촌뜨기 음악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다가 뉴욕과 시카고, 캔자스에서 쇼 음악으로 전파되면서 찬란한 스윙 재즈의 시대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베니 굿맨(Benny Goodman), 글렌 밀러(Glenn Miller),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같은 스타가 탄생했다. 특히 뉴올리언스 출신으로 가장 성공한 루이 암스트롱을 재즈의 발명가로 부르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재즈 보컬의 백미인 스캣(Scat: 의미가 없는 의성어로 즉흥적으로 노래하는 창법)을 최초로 선보인 사람도 루이 암스트롱이었다.
그런데 이때 스스로 재즈를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뉴올리언스와 시카고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던 젤리 롤 모턴은 “내가 바로 래그타임(Ragtime: 재즈의 전신으로 불규칙한 악센트와 경쾌한 리듬이 특징)의 창시자이며 1902년에 재즈를 발명했다”고 공언했다. 1890년생인 모턴은 이미 인기가 쇠락한 연주자였고 스타도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그의 주장은 뜬금없는 이야기로 평가절하되었다. 무엇보다 1902년에 만들었다고 특정한 게 웃음거리가 되었다. 젤리 롤 모턴이 허풍쟁이였는지는 몰라도 매우 거만한 성격이었다는 것은 여러 문헌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1938년에 CBS 방송국으로 공개서한을 보냈다. 당시 인기 라디오 프로였던 에서 “W. C. 핸디(William Christopher Handy)가 재즈를 만든 주인공”이라는 멘트가 나가자 이를 듣고 분노의 편지를 썼던 것이다.
W. C. 핸디는 블루스의 명곡 ‘St. Louis Blues’의 작곡가이자 악보 출판 사업으로도 큰돈을 번 인물이었다. 블루스가 재즈의 근간이고 핸디의 출생 연도가 1873년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모턴은 이를 엉터리 방송이라고 맹비난했고 W. C. 핸디는 남의 노래를 훔쳐 돈을 번 사기꾼이라고 썼다. 오래전부터 구전되던 민요를 수집해서 악보로 정리한 것일 뿐 그가 작곡했다는 블루스들은 오리지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편지의 말미에 ‘세계 최고의 작곡가이자 재즈의 창시자 젤리 롤 모턴’이라고 적었다. 실제로 핸디는 미국 전역의 블루스 민요를 채집하고 악보화했다. 이런 작업은 나름의 평가를 받았지만 모든 것을 직접 작곡했던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젤리 롤 모턴이 재즈의 창시자인가 하는 문제가 남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턴의 주장에는 따져볼 만한 근거가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사실 모턴의 정확한 출생 연도는 불분명하다. 다만 1902년부터 뉴올리언스의 공창(公娼) 지대인 스토리빌(Storyville)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이때 연주한 음악이 재즈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시기의 스토리빌은 뉴올리언스 악사들에게 중요한 활동 무대였고 재즈의 발생지로 지목되는 곳이다. 더구나 모턴은 크리올(Creole)이었다. 크리올은 스페인이나 프랑스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인종으로, 이들은 클래식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다. 흑인 노예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특혜를 누렸던 것이다. 저명한 재즈 평론가 요아킴-에른스트 베렌트(Joachim-Ernst Berendt)는 “재즈는 미국의 흑인과 유럽 음악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다”고 정의한 바 있다. 재즈가 태생적으로 혼혈 음악이며 크리올이 재즈 발생에 끼친 영향이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모턴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는 또 한 가지 요소는 바로 래그타임이었다. 그는 스콧 조플린(Scott Joplin)과 더불어 20세기 초의 대표적인 래그타임 피아니스트였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젤리 롤 모턴은 재즈의 선구자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는 더 나아가 1926년에 ‘레드 핫 페퍼스(Red Hot Peppers)’라는 밴드를 만들어 중요한 레코딩을 남겼다. 이 악단의 음악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편곡과 오케스트라적인 협주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즉, 원칙 없던 거리의 음악에 형식의 틀을 마련해가는 국면 전환이었던 것이다. 이후 본격적인 스윙재즈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빅밴드 오케스트라가 유행하게 되었다. 그것이 오로지 모턴의 영향이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분명한 건 모턴의 방식이 앞서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당대의 스타였던 루이 암스트롱과 베니 굿맨의 강렬한 인기는 젤리 롤 모턴의 존재를 빠르게 지워나갔다. 베니 굿맨 악단의 화려한 팡파르였던 ‘King Porter Stomp’의 원작자도 바로 젤리 롤 모턴이었는데 말이다.

젤리 롤 모턴

글. 남무성(재즈 평론가 겸 작가. 저서 , <재즈 잇 업!> 등 사진출처. 아마존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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