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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즐거움으로 가득한 보물섬스리랑카
스리랑카

인도양의 끝에 위치한 이 작고 가난한 섬나라를 방문하려면 많은 이유가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리랑카는 우리가 바쁘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곳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미소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스리랑카1 루완발리 다고바
2 시기리야 바위 성

신드바드가 모험을 떠난 보물섬인도 밑에 위치한 이 작은 섬나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스리랑카를 인도의 ‘작은 버전’이라고들 말하지만, 그 복잡하고 다난했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두고 그렇게 간단하게 말해버리기엔 아쉬움이 크다.
이 작은 섬나라는 오래전부터 외지인들이 비밀스럽게 동경하던 장소였다. 신드바드가 보물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났던 곳이 바로 스리랑카였다. 실제로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보석과 향신료를 거래하기 위해 이곳을 드나들었고, 그 후손들은 이곳에 정착해 여전히 보석상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곳의 보석은 영국 왕실이 주요 고객일 정도로 품질이 뛰어나다. 정말 이곳은 보물섬인 것이다.
아주 옛날에 아랍인들은 이곳을 ‘세런딥(Serendib)’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후에 ‘세런디피티(Serendipity)’의 어원이 되었다. 이 말에는 ‘우연히 발견한 즐거움’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 아름다운 말처럼, 스리랑카는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이 우연히 당신에게 찾아오는 곳이다. 이곳은 사파이어보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이 많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많은 사람이 스리랑카의 경제 수도 콜롬보(Colombo)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복잡하기만 하고 매연이 심각하며, 볼거리도 별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콜롬보는 현재의 스리랑카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을 한눈에 들여다보기에 적합한 도시다.
오랜 내전을 끝내고, 2009년부터 스리랑카는 비교적 안정된 정치적 상황을 지켜오고 있다. 그리고 막혀 있던 경제 교류가 다시 시작되면서, 중국과 유럽을 필두로 많은 개발 자금이 쏟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그간 시대에 뒤처져 있었던 콜롬보가 급속도로 개발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유리 빌딩들이 새로이 솟아오르는 중이다. 거리에는 신식 빌딩,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유럽 양식의 건물들, 쓸모를 잃고 무너져 가는 건물들, 움푹 파인 도로, 활기차고 거대한 장터의 모습이 뒤죽박죽으로 엉켜 있다. 콜롬보를 거닐면 오래됨과 새로움, 동양과 서양 문화의 충돌을 동시에 목격하게 된다.

스리랑카
스리랑카스리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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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리랑카의 고대 도시 폴로나루와 와불
2 시기리야 바위 성으로 오르는 철제 계단

믿음의 도시스리랑카 사람들은 종종 외지인의 종교가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현지인들에게 종교란 나약한 인간이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종교가 다른 것은 이해하지만 종교가 없는 것은 이해하질 못한다. 그들은 종교가 없는 나에게 말한다. “어떤 종교라도 좋으니 얼른 하나 정해서 믿어보세요.”
이 작은 섬나라는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에 따라 믿는 종교도 각기 다르다. 민족 구성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싱할 라인이 약 70%로 이들은 대부분 불교인들이다. 그리고 약 20%에 해당하는 타밀인은 힌두교를, 나머지 10%는 이슬람교와 기독교 등을 믿는다.
그렇게 다양한 종교가 작은 섬나라에 존재하지만, 이들은 종교의 다름에서 오는 차이를 인정한다. 예를 들어, 불교, 힌두교, 기독교가 한 곳에 어울려 종교 복합 단지를 이루는 사원도 있다. 또한 스리랑카는 불교의 태생적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나라다. 동방으로 전파되며 변해간 지금의 우리네 불교와는 상당히 다르다. 이러한 불교의 모습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폴로나루와(Polonnaruwa), 시기리야(Sigiriya)다. 이 고대 도시들은 스리랑카의 예전 수도였던 곳인데, 당시는 불교가 도시계획의 중심이었다. 스리랑카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세계 각지에서 몰려오는 순례자들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순백의 다고바스리랑카인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불교 사원을 찾아가 종교인으로서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국가에서 ‘포야 데이(Poya Day)’라는 휴일을 따로 정해놓았다. 그날은 모두 하얀 옷을 단정히 입고 사원을 찾는다. 불교 국가답게 스리랑카의 곳곳에는 부처상과 보리수로 치장한 다고바(Dagoba : 사리탑)를 마을 어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스리랑카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고바가 있다. 기원전 140년 전에 아누라다푸라에 지어진 루완발리 다고바(Ruwanvali Dagoba)로, 높이가 91m이며 둘레가 290m에 달한다. 이 거대한 순백의 탑은 직접 그 앞에 서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시선을 꽉 채우고도 넘치는 웅장함 속에 나와 다고바, 그리고 그날의 푸른 하늘만이 보일 뿐이다. 단순한 아름다움이다. 금으로 치장하지도 않았고 화려한 조각도 없다. 원래 불교는 어쩌면 이렇게 순수하고 웅장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불교는 동방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과하게 화려해졌다.
종교가 없는 사람도 이 다고바 앞에 서면, 인간의 나약함을 압도하는 거대한 힘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종교 건축물과 예술품은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탄생했다. 이 다고바 역시 나에게 설득하는 제스처가 상당하다. 그 강한 끌림에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반나절을 가만히 쳐다만 보았다.

스리랑카갈 포트의 모습
광기로 만들어진 바위 성시기리야는 비극과 광기의 역사가 낳은 경이로운 장소다.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의 머리로는 절대로 탄생하지 못할 곳이었다. 마치 하늘 위에 떠 있는 바위 성과 같다. 5세기, 스리랑카에는 왕이 되고픈 서자 카샤파가 살고 있었다. 그는 왕이 되고픈 욕망에 휩싸여 부왕을 살해했고, 그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기존의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를 버리고 거대한 바위 위(면적 약 15000㎡, 높이 200m)에 요새 같은 왕국을 건설했다. 적의 침입이 어려운 곳이긴 했지만, 스스로도 고립되어버렸다.
그의 집권 기간은 20년도 채 되지 않았으나 그의 광기가 남겨놓은 바위 성의 화려한 벽화, 관개시설, 도시계획 및 정원 계획 등은 과거 찬란했던 스리랑카의 문화와 기술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오래되고 녹슨 철제 계단을 따라 바위성을 올라가는 길은 아찔하다. 높은 곳에 올라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느끼게 해주는 빈터만 남겨진 왕궁의 모습과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진 정글의 모습도 멋지다.

시간이 멈춘 곳을 걷다스리랑카에는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은 도시들이 있다. 마치 대항해 시대에 거대한 함선에서 잠깐 내려 이국적인 땅을 밟고 서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16세기 돈 로렌초(Don Lorenzo)가 이끄는 함선이 이 섬나라에 불시착 이래로, 스리랑카의 450년에 가까운 식민지 역사가 시작되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순으로 식민 지배를 당한 역사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남겨져 있다. 콜롬보, 네곰보(Negombo), 갈(Gall), 누와라엘리야(Nuwara Eliya), 칸디(Kandy)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 갈 포트(Gall Port)는 식민지 시대의 스리랑카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잘 가늠하게 해준다. 갈 포트의 초석은 포르투갈이 깔았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이 갖추어지기 시작한 것은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부터였다. 이후 영국 식민지 정부가 이곳을 장악했지만 물리적인 큰 변화는 없었다. 이곳은 스리랑카의 남단에 위치해 인도양을 건너오는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어하기에 적합했다. 타운은 총 18개의 보루가 화강암으로 만든 튼튼한 벽에 둘러싸여 있다.
이곳을 거닐다 보면 마치 왜곡된 시간 속을 걷는 것만 같다. 200년을 훌쩍 넘긴 오래된 건물은 쓰임새의 변화 없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이곳이 유럽인지 동양인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서양과 현지의 건축양식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다. 이러한 국적 불명의 도시는 열대지방 특유의 풍경과 만나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다.

스리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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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킬리노치,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 반군의 집
2 자프나, 내전을 겪은 아이들이 신발없이 등교하고 있다
3 스리랑카가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제프리 바와는 우리말로 ‘소금의 강’이란 뜻의 루누강가(Lunuganga)에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 위해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건축가가 되었다.

인도양 끝에서의 사색신비로운 열대우림과 더불어 스리랑카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많다. 섬나라답게 사면이 전부 아름다운 바다지만, 그중 특히 잘 알려진 곳은 주로 콜롬보를 기준으로 남부 지역에 있다(내전 기간에 북부 지방이 위험했던 것이 그 이유인 듯하다). 관광지로 발견되는 과정에서 히피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히피들은 언제나 값싸면서도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찾아다닌다. 스리랑카에는 아직도 유럽의 히피들이 열심히 찾아오는, 개발이 상대적으로 덜 된 해변이 많다. 즉, 지나친 개발로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주는 곳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해변이 많은 것이다.
해변은 자신의 취향을 고려해 고르면 된다. 흥겨운 파티와 서핑이 목적이라면 히카두와(Hikkaduwa)가 좋고, 평화롭게 호젓한 여유를 느끼고 싶다면 웰리가마(Weligama)나 미리사(Mirissa)가 좋다. 그러나 어느 바다로 가든, 스리랑카의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보여준다. 그 석양은 꼭 홍차 한 잔과 함께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길 권한다. 뜨거웠던 하루를 보내는 의식과도 같은 이 석양은 저 멀리 인도양을 건너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고된 하루를 정리하기에 알맞다. 천천히 빛을 잃어가는 그 태양의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경이롭다.

내전의 아픔스리랑카의 남부는 아름답다. 그렇지만 북부는 약 26년 동안 진행된 내전으로 폐허가 되어버렸다. 1965년 타밀인들의 독립운동으로 시작된 내전은 스리랑카 북부 자프나(Jaff na)와 킬리노치(Kilinochchi)를 중심으로 번져나갔다. 2009년 공식적으로 내전이 종식되기까지 약 8만여 명의 사망자와 26만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 불교의 가르침대로 모기 한 마리도 죽이지 않는 현지인들의 생활 방식을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런 참혹한 살육의 내전이 발생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만약 스리랑카를 방문할 일이 있다면, 아름다운 풍경이 전해주는 이면 속에 간직된 그들의 아픈 역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현지인에게 다가가길 바란다.

Tips○ 스리랑카 방문 시즌 : 힐컨트리(중부 산악 지대), 서부와 남부 해안 지역은 12~3월이 시즌이다. 4월은 스리랑카의 새해라 교통편에 유의해야 하고, 3~5월은 가장 더운 시기이다. 5~8월은 얄라 몬순 기후로 남부와 서부, 힐컨트리 지역은 비가 많이 내리지만, 이 시기에 북부와 동부는 여행하기에 알맞다.
○ 사원에서의 예절 : 사원 내에서는 신발과 모자를 벗어야 한다. 긴소매의 윗옷과 바지를 입어야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반바지도 허락하는 경우가 많다. 불교 국가이기에 부처상이나 다고바를 방문할 때는 예절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 가격의 흥정 : 스리랑카는 외국인 가격과 현지인 가격을 따로 책정하는 경우가 많다. 관광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 현지인들은 아주 친절하기 때문에, 길을 찾거나 적당한 가격을 물어보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제프리 바와의 건축물 : 그의 건축물이 궁금하다면, 콜롬보의 파라다이스 로드 갤러리 카페와 그의 개인 주택(33rd Lane), 담불라의 칸달라마 호텔, 벤토타의 비치클럽 호텔을 찾아도 좋다.

스리랑카스리랑카의 해변

한국예탁결제원은 해외 중앙예탁결제회사(CSD), 국제예탁결제회사(ICSD) 등과의
양해각서(MOU) 체결을 통해 증권시장 발전을 위한 정보 교류 및 상호 협력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현재 23개국 31개 기관과 MOU를 체결해 협력하고 있으며 2018년 11월 27일,
CDS(Central Depository Systems Pvt. Ltd.)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글·사진. 안종현(여행작가. 저서 <위로의 길을 따라 걸을 것>, <꼬호머더, 스리랑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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