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를 만나다
HOME 뒤로
검색 분류
블로그 전송 카페 전송 밴드 전송 카카오스토리 전송 페이스북전송 트위터전송
서예가 청농 문관효붓끝으로 새롭게 빚는 우리 한글의 가치
붓끝으로 새롭게 빚는 우리 한글의 가치
푸를 청(靑), 농사 농(農). 그의 호 두 글자에는 ‘푸른 농사’란 뜻이 담겨 있다.
푸르게 한창 자라나는 농작물과 흐뭇한 웃음으로 그 풍경을 바라보는 농부의 시선이 느껴지는 이 호에서는
항상 젊고 싱싱한 마음을 작업에 담겠다는 서예가의 의지가 엿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의지는 끊임없이 의미 있는 작업을 찾아 나서는 그의 쉼 없는 여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배움을 시작하다구체적인 사물이 아닌 추상적인 문자를 통해, 다양한 색깔이 아닌 검정 하나만으로 조형미는 물론, 여러 색을 사용한 듯한 효과를 내는 서예(書藝)는 문자 그대로 붓글씨로 만드는 예술 작품이다. 학자라면 의당 붓과 벼루, 먹을 가까이했던 옛 시절을 지나 이제는 조금 특별한 의지나 열정이 없으면 쉽사리 붓을 잡을 수 없는 시대, 문관효 선생의 가는 발걸음마다 놓인 붓 자국은 그래서 더없이 특별하고 소중하다. 과거에는 섬이었지만 지금은 육지가 된 진도에서 나고 자란 문관효 선생이 처음 붓을 잡은 건 10세 때 일이었다.
“고향인 진도에서 할아버지께서 서당을 하셨어요. 당시 가난해서 학교에 못 다니는 마을 청년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시다가 농한기에 육지 선생님을 모시고 와 사랑방에서 수업을 하게 하셨죠. 저도 함께 공부하고 싶었지만 할아버지께서는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된다고 못 들어오게 하셨어요. 할 수 없이 밖에서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운율에 맞춰 부지깽이를 두드리며 귀동냥 수업을 했지요.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약속한 열 살 때부터 수업에 참여했는데 그때 처음 붓을 든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그가 한자를 넘어 한글에 무한 애정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이 청소년 시기에 이루어졌으니 그에게 서예와 한글은 같은 선상에 놓인 일종의 운명 같은 필연인 셈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68년에 국민교육헌장이 발표됐습니다. 당시 우리 학교에서는 교실마다 그 내용을 써서 걸어놓도록 했는데, 서예를 가르치던 선생님께서 제게 그 작업을 맡기셨어요. 한 자 한 자 공들여 국민교육헌장 쓰는 작업을 하면서 한글 글쓰기의 재미를 깨달았던 것 같아요. 그때 느낀 재미가 여전히 생각납니다.”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서법무부 공무원으로 오래도록 일을 하는 중에도 결코 붓을 놓지 않았던 문관효 선생은 2013년 ‘원곡서예문화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원곡 김기승 서예가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78년 원곡문화재단이 제정한 상으로 서예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대표적인 상이다. 그의 수상은 한자와 한글 필법을 넘나들며 궁체와 고체를 두루 구사해 궁체 일변도의 한국 서단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온 작가의 오랜 노력이 드디어 인정을 받은 일종의 사건이었다. 2013년은 문관효 선생의 역량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해이기도 했다. <훈민정음> 언해본을 재구성한 작품이 한글날 행사의 일환으로 광화문 광장에 길이 30m의 규모로 전시되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훈민정음> 언해본은 한자가 크고 한글이 작게 쓰여 있어요. 세종대왕이 1446년에 <훈민정음> 반포 후 돌아가시고 세조 5년인 1459년에 언해본이 나왔는데, 당시 한자 위주의 사회였기에 한자를 더 크게 쓰지 않았나 싶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종대왕이 살아 계셨다면 한글 위주의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세종대왕이 직접 펴낸 <월인천강지곡> 같은 경우에는 한글이 더 크게 쓰여 있거든요. 그래서 적어도 21세기에는 세종대왕의 뜻을 살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언해본을 한글 위주로 제작해보자는 기획은 20년 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누군가는 하지 않겠나 싶었는데 2013년까지 나오지 않기에 그간 구성하고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가 써내려가기 시작했죠.”
이는 2015년 <훈민정음> 해례본 작업으로까지 이어진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글로 이 또한 한글에 대한 남다른 애정에서 비롯된 작업이었다.
“2013년에 광화문광장에 언해본을 전시했는데 일반인들이 보기엔 이해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민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서고에 장서로 꽂아놓는 장식용에 불과할 뿐이죠.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 말로 번역하는 게 바로 세종대왕의 뜻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훈민정음> 최고 권위자에게 자문해가며 써내려간 <훈민정음> 해례본 역시 2015년 한글날을 기념하여 광화문광장에 90m 길이로 전시되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상용 한글 3000자로 만든 세계 지도와 <월인천강지곡> 번역, 언해본 번역으로 이어졌다.

붓끝으로 새롭게 빚는 우리 한글의 가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자, 한글한자의 경우 획이 많고 복잡하여 표현의 폭이 넓지만 한글은 그에 비해 단순하여 표현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는 우문을 던지자 문관효 선생이 곧바로 현답을 돌려준다.
“한자는 그만의 매력이 있고 한글 역시 한글만의 자체적인 매력이 있는 문자입니다. 제 경우에는 한글이 표현하기 더 좋은 문자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시도를 하기에도 좋고요. 저는 우리 세대가 편히 볼 수 있는 한글을 쓰려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15세기에 한글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것은 <훈민정음> 그 자체였고, 18~19세기에는 궁체가 그 자리를 차지했어요. 저는 21세기에 한글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요즘 한창 유행하는 캘리그래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손으로 그린 문자’, ‘아름다운 서체’, ‘전문적인 핸드 레터링 기술’ 등 캘리그래피를 해석하는 말은 다양하지만 결국은 우리의 서예와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캘리그래피라는 단어를 자주 듣지만 막상 물어보면 제대로 정의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캘리그래피란 말은 아름다운 글씨를 뜻하니, 한글 캘리그래피는 결국 한글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시도라고 봐도 무관하겠죠. 그렇다면 한글 최초의 캘리그래피 원조는 세종대왕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캘리그래피라는 영어단어 대신 ‘멋글씨’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자인 한글을 더욱더 멋스럽게 쓰고자 노력하는 장인. 그에게는 멋글씨 장인이라는 칭호가 붙어도 좋을 것 같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서예를 취미로 시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꾸준히 글씨를 쓰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일단 잘 쓰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생각만큼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느껴 중간에 그만두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문선생에게 서예를 배우거나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조언을 구했다.
“서예를 시작하고 싶다면 고민할 필요 없이 지금 당장 시작하면 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끈기입니다. 끈기 있게 많이 쓰는 사람은 누구도 못 따라가는 게 바로 서예입니다. 쓰고 또 쓰다 보면 어느새 자신만의 필체가 생기죠. 요즘엔 모두가 바쁘고, 목적지를 향해 빨리 가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빨리빨리’를 외치다 보면 반드시 실수나 빈틈이 생기게 마련이에요. 여유가 필요한 시대이기에 더더욱 서예가 빛을 발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서예는 여유를 가지고 집중하는 몰입도가 중요한 작업이거든요. 몰입한 상태에서 리듬을 타고, 강약을 조절하는 게 중요하죠. 여유와 몰입, 리듬과 강약 조절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어요.”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서예와 함께해온 작가에게 글쓰기가 갖는 의미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서예가 아니었으면 저는 지금 살아 있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내 인생의 원동력이 되었고, 삶을 지속해가는 이유이기도 하죠. 공직에 있을 때도 저녁에 퇴근하면 꼭 먹을 갈았어요. 그리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7시까지 매일같이 글씨를 썼습니다. 서예를 하면서 제 자신을 수련해온 셈이죠. 가장 기쁜 건 긴 시간의 수련을 통해 <훈민정음>의 의미를 되살리고, 세종대왕의 정신을 되살리는 데 일조했다는 점이에요. 언젠가 세종대왕의 글을 책 한 권으로 엮어봤으면 해요. 꾸준히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가 단정히 앉아 붓을 잡는다. 먼저 잠시 텅 빈, 고요한 한지를 들여다본다. 어디를 비우고 어디를 채울 것인가. 글의 내용에 따라 글씨의 형태도 달라지니 신중하고 또 진중하다. 붓을 잡는 손끝은 또 어떠한가. 한 글자 안에서도 묵직하게 내려 누르는 부분, 나비처럼 가볍게 띄우는 부분이 모두 다르다. 그가 쓰는 글씨 하나하나에는 인간사 희로애락이 들어있다.

붓끝으로 새롭게 빚는 우리 한글의 가치

글. 이경희 사진. 황원

TOP
지난호보기
지난호 보기

198~245호 보기 X
검색하기

X